[여의도 풍향계] 거대 양당 꼼수에 누더기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<br /><br />[앵커]<br /><br />이번 총선에 처음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.<br /><br />많이들 들어보셨을텐데요.<br /><br />아마도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앞둔 비운의 존재가 되지 싶습니다.<br /><br />거대 양당의 꼼수 탓인데요.<br /><br />이번주 여의도 풍향계에서는 연동형 비례제의 잉태부터 누더기로 전락하기까지의 짧은 생애를 지성림 기자가 살펴봤습니다.<br /><br />[기자]<br /><br />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서 국회 의석을 나누는 것이 골자입니다.<br /><br />그렇게 하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돼서 울려 퍼지게 됩니다.<br /><br />정치사에 새로운 주역이 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거대 양당이 분점해온 정치 지형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습니다.<br /><br />그러나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실험은 결국 단 한 번에 그칠 것으로 보입니다.<br /><br />잉태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등장으로 무력화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.<br /><br />2018년 12월, 선거법 개정에 관심이 없는 거대 양당을 움직이기 위해 단식에 나선 군소 정당의 대표들.<br /><br /> "내 몸 하나 바쳐서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고 충격이 된다면…"<br /><br />정당 지지율이 의석 배분과 연동된다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은 축소되고 군소 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이 낮아지는 만큼 이들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였던 겁니다.<br /><br />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대표의 단식투쟁에 민주당과 당시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자고 합의했습니다.<br /><br />하지만, 이후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, 민주당은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법안을 패키지로 묶어 신속처리 안건에 올리기 위해 한국당을 배제한 채 4+1 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.<br /><br />지난해 4월 말, 4+1 공조로 선거법 개정안은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를 넘어 패스트트랙 열차에 올라탔습니다.<br /><br /> "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큰 제도를 굳건하게 세우는 아주 중요한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."<br /><br />선거법 개정을 막기 위해 당시 한국당은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, 역부족이었습니다.<br /><br />지난해 12월 말엔 무제한 토론, 즉 필리버스터 카드까지 꺼내며 저항했지만,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.<br /><br />필리버스터로는 승산 없는 싸움임을 깨달았던 한국당은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내 보였습니다.<br /><br /> "이 법(선거법 개정안)이 통과되고 나면 곧바로 저희들은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."<br /><br />그리고 몇개월 후, 설마 했던 '크리스마스 이브의 경고'는 현실이 됐습니다.<br /><br /> "자유한국당(미래통합당 전신)과 오늘 창당한 미래한국당은 한마음 한 몸으로 움직이면서 문재인 정권 심판의 대의를 위해서 손잡고 달려갈 것입니다."<br /><br />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든 통합당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민주당.<br /><br /> "꼼수로 민심을 전복해서라도 무조건 국회 제1당이 되고자 한다면 미래통합당은 민주주의도, 정당정치도, 국민의 눈초리도, 체면도, 염치도 모두 다 버렸다고 생각합니다."<br /><br />하지만 민주당 내부에 위기감이 번지며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.<br /><br />이대로 손을 놓고 있으면 통합당의 위성정당이 최대 25석의 비례 의석을 가져가는 대신 민주당은 많아야 7석밖에 안 될 거란 전망이 나왔기 때문입니다.<br /><br />"무슨 수를 쓰든 통합당의 원내 1당을 막아내자"는 것이 민주당의 새로운 명분으로 부상했고 진보진영의 분열과 내부 비판도 감수하며 결국 비례 정당을 만들어냈습니다.<br /><br /> "정당명은 '더불어시민당'으로 결정하였습니다."<br /><br />정치판에선 공수가 바뀌었습니다.<br /><br />이젠 통합당이 민주당을 향해 더불어시민당은 '괴물 선거법'의 결과물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.<br /><br /> "민주당은 비례민주당 창당에 앞서 국회를 유린한 데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하고, 누더기 걸레가 되어버린 선거법을 무효화시켜야…"<br /><br />여의도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묻습니다.<br /><br />"남이 하면 '꼼수'고, 내가 하면 '선거 전략'이냐"고.<br /><br />이렇게 거대 양당이 '밥그릇'에 눈이 멀어 경쟁적으로 비례 정당을 만들었지만, 급히 먹는 떡이 체한다고, 양쪽 비례 정당 모두 잡음이 터져 나옵니다.<br /><br />이름만 '정당'일 뿐 애초부터 독자적인 이념이나 가치는 없이 오로지 '총선 승리'란 목표만 있는 선거용 위장정당이니 예상했던 일입니다.<br /><br />파열음은 미래한국당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.<br /><br />이른바 '한선교의 난'으로 불린 비례 후보 공천 파동입니다.<br /><br />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'단호한 결단'을 선언했습니다.<br /><br />황 대표의 의지를 받든 선거인단의 불신임으로 결국 '바지사장'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.<br /><br /> "참으로 가소로운 자들에 의해서 저의 생각은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. 미래한국당 대표직을 이 시간 이후로 사퇴하겠습니다."<br /><br />더불어시민당에선 참여 정당 중 민주당을 제외하면 모두 원외 정당에, 그것도 대부분 올해 들어 선관위에 등록한 신생 정당입니다. 그러다 보니 참 난감한 일들이 잇따라 불거집니다.<br /><br />한 정당의 대표는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고, 다른 정당의 대표는 유사역사학에 심취한 인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.<br /><br />이런 정당들을 파트너로 삼은 민주당 내부에선 '부끄럽다'는 성토가 잇따라 터져 나옵니다.<br /><br /> "현재의 전개가 몹시 민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.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상황이지요."<br /><br />'정치 개혁'을 기치로 등장했던 연동형 비례제. 하지만 양당이 급조한 비례정당으로 결국은 누더기가 돼버렸습니다.<br /><br />민주당까지 비례정당을 만들자 일각에선 민주당이 애초부터 공수처법을 얻어내기 위해 연동형 비례제를 군소 정당에 내줬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옵니다.<br /><br />가수 아이비의 '이럴 거면'이란 노래가 있습니다.<br /><br />"이럴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, 멀쩡한 사람 왜 바보 ...